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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1#. 중흥동 동네가 완전히 사라진다. 글로나마 기록합니다.

느린비 2018. 8. 19. 16:33

안녕하세요. 단단비입니다.

"광주광역시 북구 중흥동, 전남대/북구청 부근" 
어릴적부터 17년을 살았던 동네가 재개발로 완전히 없어집니다. 

> 사라짐을 기록하기 위해, 
>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 기리기 위해서 저는 기록합니다. 


1편 - 가족이 살았던 집 "대문을 열면서"
기록하겠습니다. 

영원히 사라질 집이지만, 이렇게 온라인에 글이라도 남겨놔야 제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요. 
제가 기록한다면 지구상에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거겠죠. 


엄마가 말했습니다.
"우리가 살았던 집에 마지막으로 갔었어. 이제 아무도 없단다."
"여기서 자식이 자랐고,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이웃들이 살았는데 이제 없어진다니 엄마 눈에 눈물이 고였어."
"평생을 이 동네에서 방앗간을 하신 아저씨는 방앗간기계를 팔면서 아쉬움에 눈물이 흘렀다고 하시더라."

그래. 아마도 아쉬움에, 우리가 기억하고 머무르던 공간이 영원히 사라진다는 생각에 모두 그렇게 눈물을 흘린거겠지. 나도 그렇고.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제가 살던 동네가 완전히 밀리고 없어진다니, 자본주의 논리 속에 "이따위 동네/집"을 없애고 아파트를 세우는건 아무렇지 않은 일이죠.
너무도 당연하게 제가 살았던 동네는 없어집니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죠. 없어지던 말던. 저도 그동안 그랬고요. 

저는 광주를 떠나기전, 제가 살았던 동네를 홀로 거닐었습니다. 


가족이 살던 집이에요. 대문입니다.
대문에는 선명히 빨간색으로 엑스표가 쳐져있습니다. 아마도 "이 집은, 손을 다 봤다. 아무도 없다. 부셔도 좋다"라는 뜻이겠죠?
아무도 살지않고 폐허가 된 집앞에는 잡초와 쓰레기 더미가 널부러져 있었습니다. 이 집도 거대한 쓰레기더미처럼 보이네요. 
"이 집에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습니다. 어서 빨리 해치워주세요"라고 말하네요. 


어릴때, 집 대문이 살짝 열려있고 집 화단이 보이는 풍경을 좋아했어요.
왜냐면, 집 화단에는 꽃이 피고 초록색 풀이 가득했거든요. 빛바랜 시멘트 벽도 좋았어요. 


집 마당에는 풀과 꽃이 많아서 좋았어요.
겨울에는 동백나무가 꽃을 피워 송이를 떨어뜨리고, 봄이 지나 여름이 올 무렵은 빨강/노랑/흰 장미꽃이 피었습니다.
작은 연보라색 꽃도 피었는데 이름이 기억 안나요. 그 꽃이 필때는 마당 전체가 꽃향으로 진동했어요.
엄마는 화단에 포도도 심고, 난도 심고, 대추나무도 심고 별걸 다 심었어요.

깔끔한 성격의 아빠는 주말마다 마당을 쓸고 또 쓸었습니다. 
지금은 가꾸어지지 않은 잡초가 가득 하네요. 


집을 부수는 사람이 정말 많이도 부셨네요. 바닥에는 유리가 가득, 화단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어요. 


 마당의 타일입니다. 6각형 모양의 타일이에요. 이 타일을 들추면 애벌레, 곰벌레가 나왔어요.
곰벌레는 동그랗게 굴리는 재미가 있었는데, 가끔 큰 애벌레가 나오면 깜짝 놀랐습니다.
타일을 들추고 난 후, 다시 조심스럽게 덮어놨어요. 


집이 사라지면서 가장 슬픈 점은.. 

나에게 "집"은 이곳 뿐이였더라, 는 거에요. 

태어난 이후로 이곳에서 17년을 살고,
그 다음 3년은 이사를 간 아파트에서 살았어요. 

스무살 이후에는 광주를 떠나 쭉 서울 원룸에서 살았지요.
여러분, 사실 원룸은 집이 아니잖아요? 그저 잠만 자는 곳 뿐이니까,

그래서 저에게 "집"은 이곳 뿐이었어요.
생각해보니, 마땅히 집이라고 부를 수 있던건 여기밖에 없었던 거에요. 

저는 이제 집이 없어요. 그래서 마음이 많이 아파요. 
나는 집을 다시 찾아갈 수 있을까?



재개발로 "사라지는 집 이야기" 또 쓰겠습니다. 
 #2. 2편으로